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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 암살 직전, 그가 했던 연설은 무슨 내용이었나

YouText 2022. 7. 14. 20:30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 암살 직전, 그가 했던 연설은 무슨 내용이었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사망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사건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요. ‘탕탕’, 단 두 발이었습니다. 그 두 발의 소리로 모든 것이 종료됐습니다. 통산 8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로 재임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이 두 발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베 전 총리는 길거리 연설 중 사고를 당했다는 점은 모두 잘 알고 계실 텐데, 그는 그날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그리고 그가 길거리에서 하려던 연설을 자세히 알아볼까 합니다.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지난 8일 길거리 유세 도중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정계에 입문한 계기는 그의 아버지 덕분입니다. 외무상을 지낸 ‘아베 신타로’는 1982년, 자신의 아들 ‘아베 신조’를 비서로 고용하며 정계에 입문시켰죠. 그러다 1991년 아베 신타로가 별세하고 2년 뒤 1993년, 그의 지역구 ‘야마구치 1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당선됐는데요. 정치에 있어서 만큼은 후진국이라 불리는 일본에는 ‘세습 정치’라는 지극히 후진국스러운 전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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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예부터 과거 제도라는 풍습이 있어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면 출세길이 열리는 반면, 일본에는 과거 제도가 아닌 세습으로 인재를 뽑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본은 민주 사회가 아닌 귀족제에 가까운 정치 형태를 갖게 됐는데요. 아베 역시 아버지 아베 신타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중의원에 당선됐죠. 대표적인 세습 정치인이었던 아베가 일본 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2년입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북한을 방문할 당시, 관방장관 자격으로 동행한 그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두고 강경 대응을 주문하면서 ‘믿을 수 있는 우익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고 차곡차곡 그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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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내에서 주요 요직을 모두 거친 그는 2006년 52살 최연소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그러나 1차 집권은 고작 1년에 그쳤습니다. 당시 위안부 문제에 강경했던 아베는 특히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대한 공격에 치중했는데, 2007년 7월 미국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해 버렸죠. 결국 비슷한 시기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결국 사임을 발표했죠. 그리고 5년 뒤 2012년 12월,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합니다. 그리고는 무려 7년 8개월이라는 장기 집권에 성공했는데, 이때 그가 가장 주도적으로 추진한 목표가 바로 헌법 개정입니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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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으며 7년간의 장기 집권을 이어갔으나, 2019년부터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피로도가 증가했고, 그와 가까운 인물들이 운영하는 사학법인이 특혜를 받았다는 스캔들이 터지고 국가예산으로 지지자들을 접대하는 데 사용했다는 ‘벚꽃 스캔들’ 그리고 코로나로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불상사가 겹치면서 내각 지지율이 무려 20%까지 떨어지자 결국 2020년 8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이유를 들어 사임을 발표했는데요.

아베 이후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로 총리가 이어졌지만, 아베는 여전히 자민당 내 상왕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강했습니다. 자민당 내에는 그가 이끄는 최대 파벌, ‘아베파’가 있는데, 무려 현역 의원 95명이 가입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총리로 집권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이끄는 아베파를 이용해 여전한 정치적인 입지를 과시하고 있었죠. 이번 사고 역시 아베파와 관련이 있습니다. 10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를 앞둔 지난 8일 오전 11시 30분경, 아베 전 총리는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길거리 연설 중이었는데, 원래 이 연설은 일정에 없었습니다. 7일 저녁까지만 해도 다음 날에는 나가노에서 유세 일정을 진행할 계획이었죠.

그러나 재선을 꾀하는 아베파 소속의 ‘사토 게이’라는 정치인은 자신이 열세에 처하자 긴급히 아베에게 연락해 지원 유세를 부탁했고, 유세 일정을 나가노현에서 나라현으로 변경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유세를 시작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원래 유세는 유세 차량에 올라타 진행되지만,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동선이 바뀌면서 유세차를 동원하지 못했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유세하다 참변을 당했는데요. 자신의 어머니가 빠진 종교를 아베가 지지한다고 생각한 해상자위대 출신의 ‘야마가미 데쓰야’는 직접 제작한 무기로 아베를 공격해 사망에 이르게 했죠. 그렇다면 아베는 길거리 유세 중 무슨 말을 하고 있었으며, 왜 사토 게이라는 정치인을 돕게 된 것일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그가 평생의 과업이라 생각한 헌법 개정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베가 어떤 말로 지지자들을 설득하든 그 궁극적인 목표는 ‘헌법 개정’을 위해 참의원 수를 최대한 늘리기 위한 것이었죠. 아베 2차 재임 기간 중 무모하리만치 강행했던 헌법 개정 목표는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치안 유지’에서 전투가 가능한 ‘국방군’으로 격상시키겠다는 것이죠. 헌법이란 한 국가의 법체계 가운데 최고 단계에 위치하는 법이면서 가장 기초가 되는 법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헌법에 반한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일본 헌법이 무슨 문제가 있길래, ‘약한 일본’이 된 것일까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서막을 알렸다는 것이 일반 상식이지만, 일부는 1931년 9월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즉, 일본이 중국을 무력으로 침범한 ‘만주 사변’이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었다고 보는 것이죠.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든, 일본이 일으킨 만주 사변이든 그 전쟁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며 막을 내렸는데요. 일왕 ‘히로히토’는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를 통해 ‘대동아전쟁 종결 조서’를 읽으며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했는데요.

4분 42초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 항복 선언문 중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뎌…”라는 문장 외에 이 발표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는 라디오에 서서 “미국과 영국의 선전포고를 한 까닭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다.”라거나 “뿐만 아니라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번번이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하였으며, 그 참해는 미치는 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거나 또는 “전쟁에서 순직한 자 및 그 유족들을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진다.”라는 등 항복이 아닌 책임 회피로 일관했죠.

그러나 어쨌든 그 발표로 제2차 세계대전은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패배는 어쩌면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1800년대부터 일본은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했는데, 그 침략 논리가 참 일본스럽습니다. ‘동양의 황인종들은 서양 백인들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연합해야 하는데,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앞장설 테니 다른 황인종들은 일본을 따르라’는 논리였습니다. 결국 자신들과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청나라와 조선뿐 아니라 러시아까지 차례로 침략하면서 콧대가 하늘을 찌르던 일본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칩니다. 미국을 침공한 것이죠.

1941년 12월,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습하자, 그동안 조용하던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됐고, 핵폭탄 두 방으로 일본을 무력화시켰는데요. 모든 전쟁범죄를 뒤집어쓴 일본은 이후 약 7년간 연합군의 점령통치를 받습니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은 즉시 일본의 ‘제국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개정 작업에 돌입합니다. 당시 연합군 최고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헌법 개정 작업에 돌입하면서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하는데요. 당시 미국은 일본의 철저한 비군사화 노선을 결정했는데, 맥아더는 1947년 5월 3일, 개정된 헌법 제9조에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불인정’을 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베가 그토록 개정하고 싶어 했던 조항입니다. 제9조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의 전쟁 및 무력의 행사는 영구히 포기하며, 육해공군 및 그 외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리고 명시하고 있는바, 일본은 앞으로 전쟁을 포함해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할 수 없고, 군대를 포함한 전쟁 병력도 보유할 수 없으며, 전투할 권리까지 포기시켰습니다. 이 조항 때문에 현재 일본 헌법이 ‘평화 헌법’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1947년 5월 3일, 시행된 이후 단 한 번의 개정도 없었죠.

종종 “일본에는 ‘자위대’가 있는데 왜 군대가 없다고 하느냐?”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자위대는 군대가 아닙니다. 개정 헌법 당시 군대를 보유할 수 없도록 한 맥아더였지만, ‘일본 내에도 치안 유지는 필요하다’라는 생각에 ‘경찰 예비대’ 창설을 허용했고, 이것이 1952년 보안대로, 1954년에는 자위대법을 통과시켜 자위대로 편입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싸울 수 있으나 전쟁은 할 수 없는 ‘치안 유지대’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어쨌든 단 한 번의 개정도 없이 70년이 흘렀으니 군대를 가질 수 있는 일본으로 태어나기 위해 아베가 제9조를 그토록 개정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처음 이를 공론화시킨 것은 2014년으로 “일본의 우방국에 무력 공격이 발생하면 일본의 안보 역시 위협받을 것이고 국민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의 무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라면서 헌법 해석을 뒤틀었습니다. 즉,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무력 행사를 허용하자는 취지였는데요. 그러나 안보법 도입, 자위대의 헌법 명시 등을 주장하며 개헌안을 내세웠지만, 주변국의 반발과 일본 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끝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사퇴 기자 회견에서까지 ‘창자가 찢어지듯이 고통스럽다’라고 표현한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그는 이 헌법 개정을 ‘필생의 과업’으로 내세운 만큼 총리 사퇴 후에도 여전히 이를 관철시키려 노력했던 것이고, 이 노력의 일환으로 나라현에서 유세 연설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겁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동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가 진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에서는 유력 정치인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뒤 치러지는 선거를 ‘도무라이 갓센’이라고 하는데, 그 추모 열기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그 선거의 결과는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베는 10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일본은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누어 국회를 구성하는데, 그중 참의원은 6년 임기, 총 248명으로 채웁니다. 그리고 3년에 한 번씩 전체 참의원의 절반을 새로 뽑는 선거를 진행하는데, 어제 선거에 걸린 총 125석 중 집권 자민당이 63석,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13석을 가져왔습니다. 이미 기존 의석에서 70석을 가지고 있고, 이번 선거로 최소 76석이 확보됐기 때문에 과반 의석은 물론이고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까지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무난히 확보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3년간 전국 규모의 대형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소위 ‘황금의 3년’을 확보한 만큼 지금까지 미뤄둔 헌법 개정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헌법에 자위대 명기 등을 포함한 개헌을 조기에 실현한다’라는 공약을 내세운 만큼 앞으로 일본에서는 헌법 개정이 빠르게 추진될 것이 확실합니다. 앞으로 일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디씨멘터리에서는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 채널에서 다뤘으면 좋겠는 뉴스 또는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콘텐츠는 디씨멘터리 네이버 닷컴으로 보내주시면 소중히 제작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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