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칼국수가 우동의 원조라고? 일본 우동면 회사 CEO의 고백!

2022. 5. 11. 18:30지식

한국의 칼국수가 우동의 원조라고? 일본 우동면 회사 CEO의 고백!

'장인 문화'로 잘 알려진 일본 최고의 기업 중 우동면 하나로 세계 최고가 된 기업이 있습니다. 벌써 창업 110주년을 맞이한 이 기업은 110년간 축적된 노하우 덕분에 우동면에 있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을 가졌죠.

그런데 이 기업의 CEO가 쓴 책 한 권 때문에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도대체 책에 어떤 주장을 남겼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안녕하세요, 디씨멘터리입니다. 제 기준에서 라면과 김치, 햄버거와 콜라, 파스타와 피클, 파전과 막걸리, 골뱅이무침과 소면. 치킨과 맥주는 보통 천생연분입니다. 하나가 빠지면 허전해지기 때문에 라면을 먹을 때는 김치가, 파전을 먹을 때는 막걸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 초밥의 천생연분은 우동입니다. 회전 초밥집에서 초밥으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에는 꼭 우동으로 입가심하는 것이 하나의 코스처럼 굳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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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이야기를 잠깐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일본이 스시, 즉 초밥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만들었는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아래로 바로 이동하셔도 좋습니다.

일본의 초밥은 햄버거, 콜라, 커피, 라면 등과 함께 세계 8대 음식으로 꼽힙니다. 함께 언급되는 대부분의 음식이 현대에 와서 소비되기 시작한 가공식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초밥의 성공은 단연 두드러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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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초밥은 1600년대 중반부터 먹기 시작한 일본의 전통적인 패스트푸드였습니다. 섬나라의 특성상 생선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지만, 갑자기 생선을 밥에 올려 먹게 된 계기는 1657년 1월에 에도(현재의 도쿄)에서 발생한 대화재 때문입니다. 이 화재로 에도 주택의 10채 중 6채가 불타고 1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죽었는데요.

당시 이 화재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빠르게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애도로 몰려들었는데, 이들을 위한 먹거리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현재 초밥과 소바 등 일본의 패스트푸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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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은 누구나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하고 싶을 때 또는 취객들이 한 잔 술과 함께 허기진 배를 가볍게 채우고 싶을 때 먹는 거리의 음식이었습니다. 적어도 약 300년간, 그러니까 1960년대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럼 초밥이 어떻게 세계적인 고급 요리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일까요?

원래 일본은 1940년 하계 올림픽 개최권을 얻었습니다만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키며 개최권을 반납했습니다. 그러다 일본이 원자 폭탄 두 방에 완벽한 항복을 선언하면서 세계가 안정을 되찾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64년 일본은 다시 한번 하계 올림픽 개최권을 취득합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에 퍼진 일본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졌죠.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 세계 최초 위성을 활용한 올림픽 실시간 중계, 컬러 TV의 상용화 등 일본은 이 올림픽으로 전 세계에 일본의 발전상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소식에 미국을 중심으로 서양에서는 엄청난 비난을 쏟아부었죠. 미개인처럼 날생선이나 먹는 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비아냥이 쏟아졌고, 실제로 미국은 보이콧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초밥은 당시 서구권에서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는 식문화였죠. 어떻게든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었던 일본은 이 비난을 잠식하기 위해 정부 차원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시작합니다.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인 홍보와 지원을 힘에 입은 초밥은 서양에서 고급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죠.

여기에 일본 특유의 미의식과 차 문화로 대표되는 엄격한 식사 예절이 곁들여지면서 초밥은 서양인 중에서도 상류층만 즐기는 고급 음식이 됐습니다. 스마트폰을 발명한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 애플이 고용한 사람은 IT 업계 전문가가 아니라 일본인 초밥 요리사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서양에서 초밥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입니다.

아직 서구권에서 초밥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을 때 로버트 드 니로는 초밥의 매력 푹 빠져 있었고, 자신이 단골로 드나들던 초밥집 요리사에게 동업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1994년 둘은 합작 투자로 뉴욕 맨해튼에 전문 초밥집을 개점했고, 이후 할리우드 전역에 초밥 문화가 퍼져나가게 되는데요. 이후 '미개인의 음식'이었던 초밥이 상류층이 즐기는 고급 동양 음식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런데 초밥의 천생연분인 우동이 한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일본 최고의 우동면 제조 기업 CEO가 자신의 책에 자세하게 주장한 내용인데요.

일본 우동의 산증인이자 부동의 1위 기업인 제면 기업은 단연 '사누키면가'입니다. 1910년에 창업한 112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역사 깊은 기업인데요. 이 기업의 기술 연구 센터는 현재까지 40,000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면을 만드는 자격증인 제면기술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물론 유럽, 호주, 러시아까지 진출한 명실상부 세계적인 제면 기업이죠.

현재 사누키면가는 오카하라 유지 사장인데요. 1910년 그의 조부가 최초로 농기구 제조 회사로 사업을 시작했고, 1965년 카가와현 정부로부터 제면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 제면기를 제작한 이후 제면기 전문 기업으로 전환했죠.

1976년 취임한 후 3대째 우동면을 생산하고 있는 오카하라 유지 사장은 최근 110여 년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저서 '불역유행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을 썼습니다. 우동의 역사를 포함, 우동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집대성한 그 책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바로 '우동의 기원'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그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에도 시대에 걸쳐 한반도에서 건너온 면 요리가 우동의 원형'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이 주장은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일본에서 우동의 기원에 대한 것은 약 800년경 '구카이'라는 승려가 중국(당나라)에서 제조법을 배워왔다는 '중국전래설'이 주류이며, 사누키 우동이 일본 원조 우동이라고 인정받는 것도 구카이의 고향이 현 카가와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도 1인당 우동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이 카가와현이고, 현 곳곳에 있는 전통 우동 가게를 방문하는 여행 상품도 존재하죠. 카가와현에서 만드는 면을 '사누키 우동'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카가와현에 신사 참배 왔던 참배객이 이를 먹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됐습니다.

하지만 오키하라는 '구카이가 활동하던 800년경에는 일본에 우동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소금과 밀가루가 존재하지 않았고, 소금 생산을 시작한 건 에도 시대부터다. 우동을 구카이의 공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800년 경 당시 일본은 쌀을 주로 먹었기 때문에 밀가루를 활용한 면 요리가 거의 없었는데요.

또한 그는 '일본의 면 요리는 그로부터 약 400~500년 후 무로마치 시대에 조선 외교 사절단(조선통신사)이 한반도의 면 요리인 칼국수를 소개하면서 처음 전해졌다. 무로마치 시대에 조선통신사가 가져온 맷돌이 일본에도 보급됐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먹던 전통 음식 칼국수가 우동의 원형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다'라고 분석했는데요. 전 세계에서 'Udon(우동)'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는 일본의 전통 면 요리의 기원은 한반도의 칼국수라는 겁니다.

사실 오카하라 사장의 주장처럼 '우동의 기원이 한국의 칼국수'라는 말이 정확한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15세기 초부터 일본으로 파견되기 시작한 조선통신사는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해 주었습니다.

15세기 일본의 무로마치 막부는 조선과의 원활한 관계가 이익이라는 판단하에 '상호 평화와 우호를 유지하고 원활한 무역을 하고 싶다'라고 청해 왔는데, 이때 결성된 것이 통신사입니다. 조선에서는 정기적으로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고, 일본은 국왕사를 조선으로 파견하여 우호를 다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통신사는 초기 보빙사, 회례사 등으로 불리다가 세종대왕이 통신사라 명하면서 굳어진 이름입니다.  조선통신사의 첫 목적은 일본과의 우호를 다지는 것이었으나, 이들은 조선의 문물을 일본에 알리는 역할을 했는데요. 조선에서 파견된 통신사를 기다리던 인물은 다름 아닌 일본의 지식인과 예술인이었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예부터 늘 문화 선진국이었던 만큼, 군사력에서는 일본이 앞섰을지 몰라도 문예 학술 분야는 조선이 훨씬 앞섰었죠.

이 때문에 통신사가 머무는 곳마다 이들과 교류하려는 일본 학자가 모여들어 부족한 지식을 채웠다고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통신사가 써 주는 글자 몇 개, 그림 한 점, 한시 한 구절은 일본인 사이에서 없어서 못 파는 명품이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일부러 글솜씨가 뛰어난 이들을 대거 파견하기도 했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선의 맷돌이 일본에 전해 졌으며, 맷돌로 인해 밀가루를 빻을 수 있게 됐고, 면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 현재의 우동에 이르렀다는 오카하라 회장의 주장도 과한 억측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초밥의 원조가 한국이라는 주장에 대해 자세히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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